(섹스노하우) 너 없이는 자위도 잘 안돼

(섹스노하우) 너 없이는 자위도 잘 안돼

어느 때부터인가, 자위를 잘 안 하게 됐다. (이제 나조차도 나란 놈을 위로해주는 데 지친 건지) 정확히 말하면 혼자일 때는 자위를 잘 안 한다.

적고 보니 이상하다. 누가 봐줘야 자위를 한다는 말 같네. (어라? 그러고 보니 누가 봐주는 것도 꽤 괜찮은 거 같은데...)

하여튼, 더 정확히 말하면 섹파 혹은 애인이 있을 때는 자위도 많이 하는데, 비수기에는 자위고 뭐고 그냥 쫄쫄 굶는다는 얘기다.

말이 안 되는 소리 같지만, 실제 그렇다. 왜 그런가 하면 그냥, 흥분이 안 된다.

 

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. 창창하던 10~20대 시절에는 안 그랬다. 그때는 파트너가 있거나 없거나 마구 자위를 해댔다.

야동조차 필요 없었다. 지하철 플랫폼에서 곱상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“잠실 가려면 어느 쪽을 타야 하느냐”고 물어보며

“학생이냐, 집에 가는 길이냐?”, 시답잖은 잡담 몇 마디만 붙여도 그걸로 충분했다.

그 시절의 나는 과감히 전철 하나를 보내고 얼른 역 화장실로 달려갔더랬다.

근데 지금은 어림도 없다.

고속버스터미널에서 우연히 마주친, 란제리룩을 입은 페넬로페 크루즈가 “부산영화제에 가려면 어느 버스를 타야 하느냐”고 묻는 경우라면 또 모를까.

(날 타요, 누나!)

 

요즘 자위를 하는 경우는 막 파트너를 만나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거나, 아니면 전화나 톡으로 저질스러운 대화를 나누었거나 하는 경우로 심히 좁혀졌다.

그 와중에 가장 흥분되는 때는 내 몸에서 그녀의 체취 혹은 향수, 화장품 냄새가 나는 경우다.

그녀와 굳이 일을 치르지 않았어도 포옹 정도만 했으면 어깨나 가슴 부위에 향이 남는다.

나는 그 후각적 자극을 야동 삼아 신나게 자위를 즐긴다.

 

한데 파트너가 없이 몇 주 혹은 몇 달씩 굶고 있을 때는 묘하게도 자위도 잘 안 하게 된다.

심지어는 행여 몽정을 할까 두려워 반 억지로 우유를 짜는 때도 있다. (자위를 반 억지로 한다니, 이게 말이 될 법한 소린가) 왜 이렇게 된 걸까?

나이 듦에 따라 점잖아진 걸까? 한창때가 지나 욕구가 줄어든 걸까? 그런 것 같지는 않다.

나의 변태적 욕구는 외려 젊을 때보다 더 강렬해졌다.

더불어 종종 소셜 플랫폼에 올라오는 쓰레기 테스트에서도 늘 만점의 쾌거를 이루고 있다. (쓰레기 부심)

 

그럼 혹시 최근 만났던 그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걸까?

단지 욕구 충족을 위해서가 아니고, 진실로 사랑했으므로- 그녀들이 아니면 흥분할 수가 없었던 게 아닐까?

이게 정답이라면 얼마나 좋을까. 겁나 로맨틱한 남자가 될 수 있을 텐데.

하지만 이것도 땡. 결국 나는 나름의 답을 구하긴 했다. 씁쓸하지만, 그만큼 그럴듯한.


“나는 상상력이 부족해진 것이다.”


아주머니의 뽀글뽀글 파마에서도 음모를 떠올리던 나의 씽크빅스러운 창의력은 무분별한 남용으로 인해 어느새 고갈되고 만 것이다.

(이른바 `상상력 지루`)


요컨대 단지 홍합탕이나 드라마 여주인공의 느닷없는 샤워 장면 따위로도 쉽게 흥분하던 `이데아적 이상주의자`에서, 오로지 내 몸에 남은 여인의 체취,

실시간 저질 톡 등이 있어야만 자위가 가능한 `지독한 리얼리스트` 로의 전향이랄까.


참으로 통탄할 일이다. 누가 말했던가, `정력이란 곧 상상력과 비례하는 것`이라고.

독자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본 칼럼은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는다.

이 글은 그냥 나의 현 상황에 대한 한탄이요, 넋두리일 따름이다.

나는 요즘 섹파도 애인도 없이, 본의 아니게 도를 닦고 있다.

 

해서 결론은.


그러니까. 그. 

 

아 ㅆㅂ. 외로워.

 

 

끝.